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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베이성 옌자오에서 베이징으로 출근하기 위해 검문소 앞에서 대기 중인 직장인들(왼쪽)과 퇴근 후 다시 옌자오로 향하는 귀가 행렬. [사진=웨이보]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중국 대도시의 살인적인 집값을 감당하기 어려운 젊은 직장인들은 주거비가 좀 더 싼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전전하게 된다.

이들을 베이징의 첫 글자인 베이(北)나 상하이의 다른 이름인 후(滬)에 떠돈다는 의미의 퍄오(漂)를 붙여 '베이퍄오' 혹은 '후퍄오' 등으로 부른다.

도심에서 점점 더 먼 곳으로 밀려나다가 끝내 시 경계를 벗어난 지역으로 옮겨가곤 하는데, 이 때문에 대도시 주변 베드타운의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베이징 동쪽의 옌자오(燕郊)나 상하이에서 100㎞ 남짓 떨어진 쑤저우(蘇州) 등이 대표적이다.

매일같이 수십만명이 동시간대에 몰리다 보니 출퇴근길은 늘 교통 지옥이다. 아예 별을 보며 출근하거나 오토바이를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내보기도 하지만 고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중간 검문이 강화돼 출퇴근에만 5~6시간이 소요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회계사무소에서 근무하는 장샹(姜香)씨는 기자와의 대화에서 "퇴근 후 곧장 귀가해도 밤 9시가 지나야 도착하기 일쑤"라며 "야근을 하는 날에는 자정을 넘길 때도 많다"고 전했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베이징에서 4년을 버티다가 결국 옌자오로 이사했다"며 "지금 월급으로는 옌자오에서도 뿌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한국의 청년 세대와 여러모로 닮은 중국 '두 도시 통근족(雙城通勤族)'들의 고충을 들여다보자.

◆차 버리고 오토바이 선택 "겨울에는 어쩌죠"

허베이성 랑팡시 옌자오는 베이징 톈안먼 광장과 직선으로 30㎞ 거리에 있다. 베이징 외곽의 퉁저우구와는 차오바이허(潮白河)라는 작은 하천을 경계로 접해 있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베이징 주거비에 학을 뗀 이들이 몰려들기 시작해 이내 거대한 베드타운을 형성했다.

지난해 말 기준 옌자오의 상주인구는 63만명으로 10년 전보다 92% 급증했다. 현재 30만명 이상이 옌자오에서 베이징으로 출근 중이며, 통근 차량만 5만대에 달한다.

중국신문주간은 옌자오에서 10년째 거주 중인 35세 여성 리메이(李梅)씨의 일상을 소개했다.

동북 지역 출신인 리씨와 남편은 옌자오에 집을 사고 후커우(戶口·호적)까지 옮겨 왔다.

옌자오에서 리씨의 직장까지는 차로 1시간 거리라 큰 부담 없이 지냈는데, 지난해 초 터진 코로나19 사태가 출퇴근 풍경을 완전히 바꿔 놨다.

코로나19 확산이 가속화하자 베이징과 허베이성 당국은 베이징 내 재직 증명서와 핵산검사 음성 증명서가 있는 인원에 대해서만 출근을 허용했다.

옌자오에서 베이징으로 진입할 때 맞닥뜨리는 검문소는 평소 30분 정도면 통과할 수 있었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검문이 까다로워져 1~2시간씩 대기하는 게 다반사다.

이런 상황은 중국 내 지역사회 감염이 재발할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리씨는 "베이징으로 향하는 길이 춘제(春節·중국 설) 때와 비슷할 정도로 막힌다"며 "출퇴근 정체가 너무 심해 오토바이 한 대를 구매했다"고 말했다.

오토바이를 이용하면 차를 타고 출근할 때보다 시간이 절반가량 단축된다. 리씨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매일 아침 수천 대의 오토바이가 도로를 질주하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문제는 오토바이 면허를 보유한 남편이 야근을 하거나 출장을 떠나 혼자 귀가해야 할 때다. 공유 자전거와 지하철, 버스로 이어지는 교통 수단으로는 밤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도착한다.

이런 생활이 힘들어 베이징에 월세를 구할까도 했지만 너무 비싸 결국 포기했다.

자녀가 베이징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녀도 가오카오(高考·중국판 수학능력시험)를 치르려면 후커우가 있는 허베이성에 돌아와야 한다는 점도 마음을 접은 이유 중 하나다.

리씨는 "그래도 한동안 오토바이 덕을 많이 봤는데 겨울이 걱정"이라며 "추위 때문에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건 매우 어렵다"고 토로했다.

옌자오에 집이라도 장만한 리씨와 달리 여전히 월세 생활을 하는 미혼의 젊은 직장인들은 더 녹록지 않다.

베이징 내 한인 밀집 지역인 왕징(望京)의 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퍄오쉰(朴勳)씨는 기자에게 옌자오로 거주지를 옮긴 뒤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전했다.

퍄오씨는 "인근에 사는 동료들과 차량 호출 서비스로 출퇴근을 함께 했는데 길에 버리는 시간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요즘에는 새벽 4시에 집을 나선다"며 "퇴근 후에도 친구들과 거의 어울리지 않아 점점 고립되는 느낌"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는 "같이 근무하는 18명의 직원 중 8명이 옌자오에 거주 중이며 대부분 주링허우(九零後·1990년대 출생) 세대"라며 "사장님도 직원들이 힘들어 하는 걸 아는 탓에 회식은 1년에 1~2번이 전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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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옌자오와 베이징을 잇는 도로를 가득 메우는 오토바이 부대(왼쪽)와 기차를 이용해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 휴대용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 [사진=웨이보]



◆밀리고 밀려 100km 밖까지 

안후이성 태생인 위안(宇安)씨는 상하이에서 직장을 구한 지 갓 2년이 넘었다. 그는 자신을 전형적인 후퍄오라고 소개했다.

두 해 동안 네다섯 차례나 이사를 다녔다. 위씨는 "룸메이트가 수시로 바뀌고 부동산 중개업소는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한 적이 없다"며 "짜증나는 일이 많아 안정감을 느끼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상하이에서 집을 사려면 사회보험을 장기간 납부해야 하고 가족 단위가 아니면 구매 허가도 내주지 않는다"며 "설사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충족해도 집값을 들으면 뒷걸음질을 치게 된다"고 울상을 지었다.

위씨의 선택은 상하이에서 100㎞ 넘게 떨어진 쑤저우로 거주지를 옮기는 것이었다. 부모에게 손을 벌리고 취업 후 모은 돈을 탈탈 털어 쑤저우 우장구의 작은 빌라 한 채를 샀다.

상하이 생활을 포기하는 대신 대출을 받아 전기차를 구매했다. 스스로에게 건넨 작은 위안이다.

위씨는 "전기차로 출퇴근을 하면 하루에 30위안, 한 달이면 800위안 정도의 비용이 든다"며 "지하철과 기차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비싸지만 상하이 월세를 감안하면 훨씬 절약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광둥성 광저우 서쪽의 공업 도시 자오칭(肇慶)에서 공장을 다니는 멍웨(夢月)씨는 주말마다 남편과 자녀가 있는 포산(佛山)으로 돌아온다.

자오칭에서 포산까지는 80㎞ 정도 떨어져 있다. 길이 안 막히면 차로 2시간 거리다.

멍씨는 "평일에는 회사 기숙사에 머물고 금요일 퇴근 후 집으로 향하는 두 도시 생활을 지속하는 중"이라며 "기숙사 동료들은 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직장을 구했는지 늘 궁금해 한다"고 말했다.

그는 "큰딸을 낳았을 때도, 지난해 둘째 딸을 출산했을 때도 내가 직장을 그만두고 양육을 맡았다"며 "가족들에게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고 다들 흔쾌히 동의했다"고 귀띔했다.

멍씨가 매주 반복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건 대출을 갚고 자녀 교육비를 충당하는 등 가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베이징청년보는 "베이징과 옌자오, 상하이와 쑤저우 등의 사례처럼 지역 간 인력 유동이 확대되면서 두 도시 통근족들이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다"며 "극단적인 피로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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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에서 장거리 통근족의 필수 아이템으로 소개되고 있는 U자형 목베개(왼쪽)와 태양열 보조 배터리. [사진=바이두 ]



◆장거리 출퇴근 필수 아이템까지 등장

"물은 되도록 마시지 말고 최대한 빨리 잠에 빠져라. 화장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휴대폰은 완충하고 보조 배터리도 꼭 챙겨라. 지루함을 이겨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회자되는 글이다. 도시와 도시를 오가는 장거리 출퇴근의 고충을 묘사하고 있다.

온라인과 전자상거래 플랫폼 등에는 두 도시 통근족을 위한 필수 아이템도 등장했다.

휴대용 접이식 의자는 인기 상품이다. '1초 만에 펼 수 있고 150㎏까지 견딘다. 접으면 10㎝ 두께의 쟁반 모양이 된다'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차를 기다리며 줄을 설 때, 버스나 기차가 만석일 때 유용하다. 한 누리꾼은 "기차에서 휴대용 의자 2개 중 하나를 빌려준 인연으로 한 여성과 데이트를 하게 됐다"는 글을 웨이보에 남기기도 했다.

이 밖에 공기를 빼면 작은 주머니에 넣을 수 있는 U자형 목 베개, 햇빛만 있으면 충전이 가능한 태양열 보조 배터리 등도 인기몰이 중이다.

한 베이징 소식통은 "주거비와 교통비를 제하면 남는 돈이 1000위안(약 18만원) 미만인 젊은 직장인이 수두룩하다"며 "이들 입장에서 중국 정부가 강조하는 '공동 부유'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