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는 2020시즌 93경기에서 타율 0.223으로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FA(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앞두고도 11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27을 기록하는데 그쳤다. 이에 박병호에게는 ‘에이징커브’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병호에게 손을 내민 구단이 있었다. 바로 KT였다. KT는 박병호가 충분히 반등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고, 3년 총액 30억원의 결코 적지 않은 계약을 안겼다.
이에 박병호는 이적 첫 시즌 124경기에 출전해 35홈런 타율 0.275 OPS 0.908로 반등에 성공했지만, 이는 ‘반짝’ 활약에 불과했다. 박병호는 지난해 홈런수가 18개로 급감했고, 올 시즌 성적은 처참했다. 3월 한 달 동안 박병호의 타율은 0.154에 불과했다. 당연히 박병호의 입지에도 영향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프로 무대는 ‘이름값’이 아닌 ‘실력’으로 말하는 것이기 때문. 이로 인해 박병호는 4월부터 선발보다는 벤치에서 경기를 치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자 박병호는 이강철 감독, 나도현 단장 등과 면담에서 하소연을 하는 일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난 25일 경기가 끝난 뒤 허리 문제로 인해 1군에서 말소되는 과정에서는 급기야 ‘웨이버공시’를 요청했다. 이 소식이 28일 언론을 통해 공개된 것이다. 결국 ‘이름값’이 있는 자신과 트레이드 카드를 맞추는 것이 쉽지 않으니, 본인을 주전으로 기용해 줄 수 있는 팀을 찾기 위해 방출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선수들이 구단에 불만이 있을 경우엔 트레이드를 요청하는 것이 일반적. 반면 시즌 중 선수가 새로운 행선지를 찾기 위해 ‘방출’을 요청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에이징커브’라는 불명예 수식어가 따라다닐 때 손을 내밀어 준 KT의 뒤통수를 친 것과 다름이 없었다. 박병호를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하지 않고, 웨이버공시를 한다면 KT의 손에는 그 어떠한 이익도 남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리그 문화를 잘 아는 베테랑이 이 같은 요청을 했다는 것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이에 KT 관계자는 “박병호가 방출을 요청한 것은 사실이다. 현재 구단은 여러 방면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강철 감독은 28일 경기에 앞서 “(기사에) 나온 그대로다. 더 할 말이 없다. 자기(박병호)가 방출을 시켜달라고 요구했다. 그 외에는 진전된 것이 없다. 내가 방출을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라며 연승을 타고 있는 선수단의 분위기에 대한 질문엔 “보니까 동요는 하지 않더라. 우리 선수들의 멘탈이 워낙 강하다”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