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확대경] 콧수염을 사랑한 트럼프

이데일리

[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울프가 쓴 책 ‘화염과 분노: 트럼프 백악관의 내막"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절친이자 폭스뉴스의 회장이었던 로저 에일리스가 “워싱턴의 기존 정치와 외교를 뒤흔들려면 볼턴이 필요하다”며 추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불쑥 콧수염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볼턴은 그 콧수염이 문제야.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이 틀리지 않다. 미국 정계에서 볼턴처럼 콧수염을 기르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의전과 격식을 따지는 외교분야에선 더욱 그렇다. 콧수염을 기르는 게 무슨 잘못은 아니지만, 눈에 띄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콧수염에 대한 볼턴의 자부심은 대단하다. 볼턴은 자신의 트위터에 ‘콧수염을 손질하라는 언론의 조언은 고맙지만, 콧수염을 면도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썼다.

콧수염은 볼턴의 고집스러움과 공격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 보좌관을 기용한 건 결국 그의 콧수염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칼럼을 싣기도 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콧수염을 기를 만큼 아웃사이더적인 성향을 트럼프 대통령이 높이 샀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동안 볼턴은 쓸모없는 카드였다. 지난해 6월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 백악관을 찾아왔을 때 트럼프 대통령은 볼턴을 밖으로 내보냈다. ‘슈퍼 강경파"로 통하는 볼턴은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할 수 있는 위험한 카드로 인식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콧수염" 볼턴을 다시 쓰기 시작했다.

베트남 하노이의 북미협상이 불발된 이후 대표적인 대화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침묵하는 반면, 볼턴 보좌관은 잇따라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자신이 대북협상의 핵심창구라는 점을 과시하고 있다.

어느새 볼턴 보좌관의 말이 곧 미국의 입장이 됐다. 협상파로 통하는 스티브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도 “점진적으로 진행하지 않을 것”이라며 일괄타결식 ‘빅딜"을 앞세우기 시작했다. 볼턴이 북핵 협상과 관련한 백악관 내부의 의제를 장악한 셈이다.

볼턴의 등장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양한 포석을 염두에 둔 카드다. 북한에 대한 압박만 노리는 게 아니다. 볼턴은 미국 내부 정치판을 흔드는 꽤 효과적인 카드다.

북한과의 협상 타결이 불발된 이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 내 지지도는 오히려 올랐다. 미국의 여론조사업체 라스무센이 집계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 8일 기준으로 50%를 회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이자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청문회에서 나와서 “트럼프는 거짓말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지만,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은 트럼프 정부 지지율을 지탱하는 견고한 지지대 역할을 했다.

2년 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비슷한 전략을 폈다. 자신의 1호 공약이던 ‘트럼프 케어"가 좌초되면서 지지율이 추락했자 트럼프 대통령은 기다렸다는듯이 북한을 압박했다. 당시에 등장했던 표현이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다.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초강경 발언이다. 이 발언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바닥을 치고 올라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볼턴 카드" 역시 비슷한 효과를 노린 것이다. 볼턴 보좌관이 콧수염을 휘날리며 북한을 압박할 때마다 미국 내 트럼프 정부의 지지율은 쑥쑥 올라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적을 공격하는 전략은 내부 결속을 다지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다만 북한이 볼턴의 콧수염을 호의적으로 봐주지는 않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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